토요일, 6월 19, 2010

[독서광] 더 딥: 포기할 것인가, 끝까지 버틸 것인가



친구 꼬양이 부탁으로 이번에 세스 고딘이 새로 집필한 더 딥을 번개처럼 훑어보았다. 세스 고딘은 보랏빛 소가 온다라는 책으로 엄청나게 성공을 거두었기에 반신반의하면서도 혹시나해서 교보문고로 달려갔다. 그리고 책을 펼쳐든지 10분만에... 다 읽었다. T_T 역시 자신이 예언한 바에 따라 한번 리마커블하고 나서 다시 한번 리마커블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끝나버려서 그게 문제다. 12,000원이라는 거금을 투입해서 구매할 책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독자 여러분을 위해 간략하게 내용을 요약하겠다. 흔히 쓰는 용어로 슬럼프라고 부르는 정체기인 딥(dip)과 막장에 다다른 상황인 컬드색(cul-de-sac)을 구분해, 딥에 빠진 상황에서 이를 극복해야 엄청난 성공을 거둘 수 있는 반면 컬드색에 빠지면 출구 전략을 펼쳐 전략적인 포기를 해야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내용이 전부다. 하지만 이 책의 치명적인 단점은 결과론적인 관점에서 딥과 컬드색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지금 딥인지 컬드색인지 구분하는 방법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방법이 존재한다면 이 책에서 자세히 방법을 밝혔을테지만, 두루뭉실 설명할 따름이니 책을 읽으며 답답함만 증폭될 뿐이다.



세스 고딘도 자신이 딥에 빠졌는지 컬드색에 빠졌는지 잘 모르는 듯이 보여서 참으로 안타깝다. 다음에 나오는 세스 고딘 책은 구입하지 않을 가능성이 99%로 올라갔다. T_T



EOB

일요일, 6월 13, 2010

[독서광]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




아웃라이어에 이어 말콤 그래드웰이 새롭게 지은 책이 나왔다고 해서 허겁지겁 주문해 읽어보았다. 간단하게 결론을 요약해보면 형만한 아우 없다고 역시 말콤 그래드웰도 함정에 빠진 듯이 보인다. T_T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라는 흥미로운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책은 1996년부터 뉴요커에 기고한 글 중에서 뽑아 만든 선집이라고 보면 정확하겠다. 그러다보니 블링크나 아웃라이어처럼 책 전체를 관통하는 특별한 주제는 없고 다소 산만하다는 느낌이 든다. 아웃라이어를 읽으면서 책 귀퉁이를 많이 접어놓았는데(책을 보다 흥미로운 곳이 나오면 책 귀퉁이를 접어버리는 버릇이 있다. 흔들리는 버스에서 필기도구를 꺼내 밑줄을 긋기란 쉽지 않다), 이 책을 읽으면서는 그냥 관성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고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주제나 서술 방식은 흥미로운 부분이 곳곳에 눈에 들어왔지만 기존 전작에서 화끈한 화력을 보여준 전례와 비교해 사실상 크게 '아하!'하는 감탄사를 내뱉을만한 곳은 찾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리라.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 선정은 흥미로워 보인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평상시에 우리가 크게 의식하지 않고 넘어가는 _당연한_ 심리적, 경제적, 사회적인 현상을 고른 다음에 여기에 숨어있는 비밀을 파헤치는 방법을 사용하므로 글래드웰이 지은 기존 책을 읽지 않고 이 책을 처음 읽은 독자라면 흥미롭게 읽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미국 지식인(뉴요커를 누가 사서 읽을지 상상해보라. 모르겠다고? 힌트를 참조하자)을 겨냥해 주제를 봅다보니, 특정 시절에서 미국 상황에 특화된 내용이 많기 때문에 그리 쉽게 읽히지는 않는게 정상이다.



그나마 6장 "실패의 두 얼굴"에서 다루는 '위축'과 '당황'의 차이가 대단히 만족스러워서 본전은 찾았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이 두 가지 현상의 차이점을 이해하기란 아주 어렵지만, 글래드웰은 양자의 차이점을 쉽게 설명한다.



위축은 생각이 너무 많아 생기는 문제고 당황은 생각이 나지 않아 생기는 문제다. 또한 위축되면 본능을 잃고 당황하면 본능으로 되돌아간다. 겉으로는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것이다.


책을 다 읽고나서 든 생각: 말콤 드래드웰이 다음에 선보일 책을 살지 말지 기로에 섰다. 자신의 틀을 깨고 더욱 화끈한 모습으로 다가올지 아니면 고만고만한 스토리텔러가 될지 정말 궁금하다.



EOB

토요일, 6월 05, 2010

[영화광] 대부



AFI가 10주년 기념으로 발표한 100대 영화 목록 중에 시민 케인 다음으로 2위를 차지할만큼 유명한 대부가 디지털 리마스터링 과정을 거쳐(디지털 복원은 2008년 10월에 이미 작업이 끝났다고 한다) 재개봉되었다. 대부는 1972년도에 첫 개봉했으므로 구닥다리 영화라고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거의 4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봐도 펄펄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 든다. TV 재방송할 때마다 서너번 봐서 줄거리를 다 외우고 있는 상황이지만 좁아 터져 특수효과가 화면 바깥으로 튀어나오고 일부 내용이 가위로 싹뚝 잘린 TV랑 큰 화면과 훌륭한 사운드 시스템을 갖춘 극장이랑 같을 이유가 없기에 선거하고 나서 허겁지겁 뛰어가서 보고 왔다. 멀티플렉스 속성상 여름(?) 성수기를 앞두고 막을 조금 일찍 내릴 듯이 보이므로 혹시 보려고 마음먹은 독자분이 계시면 오늘 당장 보러 가시기 바란다.



잘 만든 영화는 초반 20분 안에 승부를 거는 특성이 있다. 대부 역시 초반에 결혼식 장면 그리고 결혼식을 빙자해 대부에게 민원을 넣고 충성을 맹세하는 장면을 교차로 배치해 사람 혼을 빼버린다. 화려한 이탈리아 음식과 와인, 춤, 노래, 흥겨운 분위기를 보고 있자니, 이탈리아 갔을 때 먹은 맛난 음식이 생각나는 바람에 거의 3시간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배고파 실신할 뻔 했다. T_T 일단 이렇게 시선을 잡아둔 다음에 민원을 하나씩 해결해가며 승부사 집단(?)의 화끈한 속성(?)을 보여주고 본격적인 패밀리 사이, 그리고 패밀리 내부의 갈등을 대단히 정교하게 이야기로 풀어나간다.



마피아 영화라고 해서 총질이 난무하고 피로 떡칠을 하고 잔인하고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이 영화는 꼭 필요할 때만 피를 보여주기에 요즘 만들어지는 치고박고 싸우는 영화와 확실하게 스스로를 차별하는 특성이 있다. 하지만 보여줄 때는 확실하게 보여주는데, 일례로 비토 꼴레이네 막내 딸인 코니와 남편인 카를로가 부엌과 욕실에서 부부싸움하는 장면은 총질과 칼질보다 더한 잔인한 폭력성을 사실감 있게 관객에게 선사한다. 이 장면을 제대로 찍기 위해 코플라 가족이 총출동해서 리허설하느라 난리법썩을 떨었다는 뒷 이야기도 있다.



그렇다면 대부가 평론가, 관객 모두에게 극찬을 받을까? 영화를 보고나서 다시 한번 생각을 해봤는데, 연출-각본-배우-내용-편집-음악이라는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분야에서 완벽한 _조화_를 이루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영화를 보다 보면 뭔가 부자연스럽고 이어지지 않는 어색한 구석이 있기 마련인데, 대부를 보면서는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배우 개개인에 의존하지도 않았고(그 당시 말론 브란도는 한물 간 퇴물 배우... 알 파치노는 새파란 풋내기... T_T) 기발한 소재에 의존하지도 않았고 편집 기교로 망가진 내용을 살리지도 않았다. 묵직한 남자들의 이야기를 정석대로 다룬 결과 뭔가 더 추가하거나 뭔가 더 빼버릴 내용이 없는 대단히 만족스러운 영화가 탄생했다는 생각이다.



대부 1에 이어 7월이나 8월에 개봉하는 대부 2(역시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이다)도 감동의 도가니탕일텐데 무척 기대된다. ;)



EOB

목요일, 6월 03, 2010

[독서광] 책 vs 책: 컴퓨터를 만들어내는 개발자의 열정

이번달 developerWorks 서평은 기존 서평 형식을 바꿔 컴퓨터를 만들어내는 개발자의 열정을 잘 다룬 책 두 권을 소개한다.




  • 새로운 기계의 영혼(The soul of a new machine): 퓰리처 상 수상 작가인 트레이시 키더가 쓴 정말 멋진 책이다. B급 프로그래머에게 컴퓨터 관련 서적 중에 딱 한 권만 골라라고 하면 주저하지 않고 이 책을 고르겠다. 초강력 추천!
  • 미래를 만든 Geeks: 애플 매킨토시 애호가라면 누구나 한번쯤 봐야할 멋진 책이다. 매킨토시에 영혼을 불어넣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엔지니어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이 정도 뽐뿌질을 했으면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새로운 기계의 영혼은 과거 해적판으로 나온 책이 아니라 정식으로 라이선스를 받아 번역한 책이다. 번역판에 조금 아쉬운 점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번역 상태가 나쁘지는 않기에 구입해도 문제 없겠다.



특별 보너스: 자, 그러면 애독자를 위한 특별 선물 하나! 이번 지방 선거 투표 인증샷 + 소유하고 있는 매킨토시(powerpc 모델이면 따블, 68xxx 모델이면 따따블로 가산점이 붙는다) 인증샷을 보내주신 독자분 중 _한_ 분을 추첨해 '미래를 만든 Geeks' 책을 선물로 보내드리겠다. 응모 기간은 6월 9일(수) 23시 55분까지. 전자편지 주소는 jrogue 애뜨 gmail.com다.



EOB

화요일, 6월 01, 2010

[독서광] 운명이다: 노무현 자서전



책이 나오자마자 구입해서 읽어야지 하고 머뭇머뭇하다가 선거를 앞둔 오늘에야 다 읽었다. 양장본과 반양장본이 있는데, 양장본에 특별화보가 더 들어간 사실을 알았다면 돈을 조금 더 주고서라도 양장본을 구입했을텐데라는 아쉬움이 있다(서재 공간이 부족해 본능적으로 반양장본을 구입하는 버릇이...). 짧은 소감: 그야말로 굴곡이 컸던 인생역정이 너무나도 안타깝고 아쉽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T_T



어떤 생각으로 정치에 입문해서 여러 차례 위기를 겪으면서도 결국 대통령이 되었고 그 이후 운명적인 삶을 마감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모르는(아니 일부 몰지각한 언론에 의해 왜곡된 정보만 습득해 색안경을 끼게된) 사람이 읽어보면 더 좋을 듯 하지만, 사실상 그럴 가능성은 0%에 가깝고 대통령 노무현이 아니라 인간 노무현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싶은 사람만 읽게 될 듯이 보인다. 이 책이 언론에서 철저하게 무시(네이버 뉴스에 가서 한번 '노무현 운명이다'로 검색해보면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는 사실은 지난번 소개한 삼성을 생각한다(주요 신문사에서 아예 광고를 실어주지 않았다)에 대한 사람들의 뜨거운 호응과 더불어 암울한 2010년에도 한 가닥 희망을 품게 만든다.



가장 기억에 남는 한 마디만 정리하며, 나머지 내용은 독자 여러분들이 직접 책에서 확인하면 정말 좋겠다.



원칙을 지키면서 패배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그러나 원칙을 잃고 패배하면 다시 일어서기 어렵다. 나는 이기든 지든, 매순간 원칙을 지키면서 선거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원칙'을 지키면 '바보'아니 '병신'이 되는 험한 세상에서 오늘따라 인간 노무현이 유달리 돋보인다.



EOB

일요일, 5월 30, 2010

[독서광] 슬랙: 변화와 재창조를 이끄는 힘



책장을 보면 종종 원서와 한국어판 책이 나란히(엄밀히 말해 바로 옆(?)이라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 일상다반사다) 자리를 잡은 경우가 있다. 원서와 번역서 사이에 출간 시차가 벌어져서 미리 원서를 사놓고 보니 번역서가 나왔는데 마침 출판사에서 보내주더라... 뭐 대충 이런 시나리오가 대부분이다. 이번에 소개할 "슬랙: 변화와 재창조를 이끄는 힘"도 원서로 이미 읽어본지 오래된 책이지만 인사이트 출판사에서 보내줬기에 기억을 되살릴겸 다시 한번 꼼꼼하게 읽어봤다. 초 간단 결론: 한번 더 읽어봐도 역시 재미있는 책이다.



슬랙이라는 단어가 익숙하지 않은 독자 여러분을 위해 구글 사전 서비스에서 검색 결과를 정리해보았다. 슬랙이 뭐냐 하면...



slack - 〈로프·새끼 등이〉 늘어진, 느슨한(loose), 〈말고삐 등이〉 느즈러진;〈규율 등이〉 해이된, 힘이 없는, 맥이 빠진;〈걸음 등이〉 굼뜬, 되는대로의, 부주의한(careless), 태만한


이미 화들짝 놀란 독자들도 계시겠지만, 정시 출근, 절도와 규율을 강조하는 높으신 분이 보시기에 발톱이 쑥 나오는 불경스러운 단어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이 국내에서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 것 같다는 걱정은 예사롭지 않은 제목부터 시작되었다. T_T



이 책은 빨리빨리에 길들여진 기업 문화를 바꾸지 않고서는 생산성을 절대 높이지 못한다는 주장을 펼치기 위해 '여유'를 의미하는 '슬랙'을 중심으로 기업 스트레스의 영향, 변화와 성장, 마지막으로 리스크 관리를 설명한다. 슬랙은 출간한지 제법 되었기 때문에, 톰 디마르코가 쓴 후속 작품인 소프트웨어 프로젝트에서의 리스크 관리데드라인 : 소설로 읽는 프로젝트 관리를 비롯해 가장 최신 작품인 프로젝트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을 함께 읽어보면 더욱 이해가 쉽지 않을까 싶다.



'슬랙'을 처음 들어본 사람을 위해 설날과 추석 때 꽉 막힌 고속도로 상황을 들 수 있다. 고속도로를 최대로 _효율_적으로 활용하려면 단위 면적당 차량을 가장 많이 수용하도록 주차장으로 사용하면 된다. 하지만 최대로 _효과_적으로 활용하려면 차량 간격을 최소 100m(고속도로 100km 구간에서 안전 거리) 정도로 유지해야 한다. 여기서 100m는 낭비가 아니라 슬랙이다. 슬랙이 없다면 차량이 고속으로 주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많은 회사는 '효율'과 '효과'를 크게 혼동한다. 항상 빠듯하게 경우에 따라서는 부족하게 사람을 유지하며 '효율'을 높였다고 자화자찬한다. 하지만 일이 집중되며 문맥 전환이 일어나면서 일대 혼란이 벌어진다. '효과'적이지 못한 작업 지연, 재작업, 품질 저하가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푼돈 아껴 목돈을 잃어버리는 현상은 너무나도 자주 목격하기에 크게 놀랄만한 일도 대단한 일도 아니게 되어버린 슬픈 현실이다.



'효율'을 높여 '효과'를 줄이는 선에서 끝나면 천만 다행이다. 일을 열심히 해도 '효과'가 떨어지는 조직에서 자부심을 품고 일하는 직원을 찾기란 쉽지 않다. 아니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효율만 강조하는 회사에서는 '초과 근무'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장기간에 걸친 '초과 근무'는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주범이며, 개인의 영혼을 갉아먹는 독약이다. OECD 국가 중에서 대한민국의 노동 시간이 1위지만 생산성은 결코 노동 시간에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정량적인 평가에 익숙한 관리자 입장에서 출퇴근시간 만큼 좋은 평가 수단은 없다. 게다가 주말 특근까지 곁들이면 실패에 대한 훌륭한 변명거리까지 확보한 셈이 된다. "매일 오전 9시 출근 밤 12시 퇴근에 주말 모두 반납하고 모두 열심히 했습니다. 하지만 애당초 불가능한 일정이었습니다."



'슬랙'이 존재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두려움과 공포가 지배하는 문화 때문이다. 애플이 하청을 준 폭스콘에서 벌어진 노동자들의 집단 자실 소동은 바로 '슬랙'이 부족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두려움과 공포는 전염성이 강하며 한번이라도 이를 사용해 효과를 얻으면(아니 솔직히 말하면 효과를 얻었다고 생각이 들면), 무자비한 일정 단축과 극단적인 인력 감축을 동원하게 된다. 결국 강도는 점점 더 심해지며 결국에는 파멸에 이른다.



지금 여유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보기 어려운 프로젝트 때문에 거의 떡실신할 지경에 놓인 개발자라면, 잠시 발걸음을 멈추자. 그리고 이 책을 한번 읽어보고 어떻게 처신할지 고민해보자. 지금까지 불합리한 방식으로 일해왔다고해서 앞으로도 계속 그럴 필요가 있을까? 성공한 조직이 규율과 유연함을 어떻게 조화시키는지 살펴보고 현재 몸담고 있는 조직이 이런 변화를 수용할만한 그릇이 되지 못한다면 그릇을 박살내고 나오자(그래도 세상은 절대로 안 망한다). 인생은 삽질하기에는 너무나 짧고 소중하기 때문이다.



EOB

목요일, 5월 20, 2010

[독서광] iPhone Advanced Projects: 아이폰 개발자를 위한 실전 프로젝트 개발서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아니라 아이폰과 안드로이드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이폰 책을 하나 읽어보았다. 오브젝티브 C 문법은 어느 정도 알고(C+스몰토크. ㅋㅋ), 매킨토시 프로그래밍도 아주 약간을 알고 있기에 입문서를 건너 뛰고 실전 프로젝트 개발서로 직행했다.



"iPhone Advanced Projects: 아이폰 개발자를 위한 실전 프로젝트 개발서"은 아이폰 개발자들이 앱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얻은 노하우를 정리한 책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물론 전체 원시 코드와 개발 과정을 담았으면 국내 독자들이 환호성을 질렀겠지만, 지면 관계상 필요한 부분만 집중해서 설명하는 방식을 따르고 있기에 그리 친절하지는 않다. 하지만 "Hello, world"에서 맴도는 독자라면 실제 앱 프로젝트를 시작하기에 필요한 좋은 힌트가 되리라는 생각이다.



목차를 보면 알겠지만, 예제를 위한 억지 예제가 아니라 실제 앱에서 사용하는 각종 기술들을 정리하고 있다. 각 장에서 파티클 시스템, 체스를 위한 통신 시스템, 웹 라디오용 오디오 스트리밍 기법, 아이폰 디버깅 기법, 데이터베이스 접근을 위한 SQLite, WebObject를 연상하게 만드는 데이터 모델인 코어 데이터, 와이파이 네트워킹, 반응성 향상 기법, 푸시 알람 서비스, OpenGS ES 기법을 사용한 실제 예를 소개한다.



일반 데스크탑 클라이언트 응용이나 웹 프로그래밍, 서버와 시스템 프로그래밍과는 상당히 다른 앱 프로그래밍 나름의 모형을 아이폰 환경에 맞춰 제시하기 때문에 아이폰스러운 앱을 만드는 과정에 힌트가 되리라는 생각이다. 전문적인 프로그래머가 어떻게 앱을 설계하고 구현했는지 그리고 구현 과정에서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훔쳐볼 수 있으므로 이미 어느 정도 기초적인 지식을 습득하고 자신만의 뭔가를 만들어보려고 이리저리 시도해보는 앱 프로그래머가 보기에 적당하다. 입문서로 처음 읽으려고 구입한 독자라면 1장부터 바로 좌절 모드로 돌입할지도 모르겠다.



번역 상태는 중간이고((비록 완결된 예제는 아니지만) 코드가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오브젝티브 C 프로그래밍에 익숙한 독자라면 뭐... 못읽을 수준은 아니다), 역자주 상태는 최악이다. 보통 본문에서 사고가 터지는데 이 책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역자주에서 대형 사고가 몇 개 터졌다(한 두 개라면 실수라고 치고 넘어갔을거다). 같이 읽어보자.



레이스 컨디션의 예를 들어보자. 스레드를 말이라 가정하자. 1번 말과 2번 말 두 마리가 경주를 한다. 1번 말이 항상 우승해야 정상 동작이라고 할 때, 만약 2번 말이 우승하게 된다면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이런 결과가 프로그램에서 나타나면 크래쉬될 수 있다. 비실비실한 2번 말이 우승할 확률은 굉장히 적기 때문에 크래쉬를 재현할 수 있는 확률도 낮다. 이러한 경우를 레이스 켠디션이라 하며, 레이스 컨디션은 늘 발생하는 게 아니므로 수정하기가 어렵다.


B급 프로그래머 촌평: 그냥 삶에 찌들린 불쌍한 프로그래머들을 마구 웃기려고 이렇게 썼다고 믿는다. 정말 심각하게 고민해서 (나름 독자를 위해) 저런 역자주를 달았다면, 뭐 여기서 더 할 말이 없다.



SQL을 어셈블리 언어에 비유한다면, 고수준 도메인 모델은 C 언어를 이용한 접근 방법이라 생각하면 된다.


B급 프로그래머 촌평: SQL을 어셈블리 언어에 비유한 책은 처음 봤다. 앞으로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 같다.



스텁 함수란 내용이 없는 빈 함수를 의미한다.


B급 프로그래머 촌평: dummy랑 stub이랑 햇갈렸나?



픽사의 스타트랙에 나오는 우주선의 이름을 기억하는가? 그 이름이 바로 기업(enterprise, 엔터프라이즈)이다.


B급 프로그래머 촌평: 스타트랙은 픽사가 아니라 파라마운트에서 만든 시리즈물이다. 그리고 굳이 기를 쓰고 번역한다면 '기업'이 아니라 '모험'이겠지.



EOB

일요일, 5월 16, 2010

[독서광] 나쁜 사마리아인들



국방부에서 지정한 군내 반입 금지 품목으로 일약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 책은 너무나도 유명해서 굳이 서평으로 남길 필요가 있을까 잠깐 고민을 하다가 그냥 재미로 독후감을 한번 정리해보았다. 장하준 교수야 이미 이 블로그에서 [독서광] 쾌도난마 한국경제라는 제목으로 소개한 바 있으므로 참고하기 바라며, 오늘은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정체를 밝혀보기로 하자.



장하준 교수가 지목한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이미 경제적인 성과를 거둬 소위 말하는 선진국 대열에 낀 국가와 이 국가들이 뒤에서 조정하는 각종 국제 기구(예: 호랑이 곶감에 버금가는 공포의 I/M/F)를 일컫는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온갖 나쁜 짓을 일삼은 다음에 이를 망각한 채로 후발 주자에게 자신들이 이상향이라고 여기는 관례를 따르도록 만들어 진입장벽을 쌓는 특징이 있다. 물론 선구자니까 그 만큼 시행착오도 있었고 수업료도 내었으니 후발 주자들에게 입장료를 받아 챙기겠다는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그 결과 벌어지는 눈물나는 현실은 인정하지 못하겠다.



이 책은 선진국들이 전가의 보도로 휘두르는 자유 무역 주의, 평평한 운동장 이론, 중앙 경제 계획의 부정과 중앙 은행의 독립성 강화, 외국인 투자 자유화, 공기업 매각, 지적 재산권 보호, 재정 건정성 강화, 부패 척결과 같은 화려한 미사여구에 맞서 허상을 파해친다. 그러다보니 부패하고 비민주적인 나라를 옹호하고, 박정희 식의 중앙 경제 개발 정책을 지지하고, 보호 무역을 주장하고, 공기업을 선호한다는 인상을 주게 되어 오른쪽(?) 왼쪽(?)에서 동시에 두드려 맞는 기현상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은 아름다운 과거가 아니라 추악한 현실을 다룬다는 점에서 샌드위치가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현실을 파악하는 과정에 많은 도움을 주리라 생각한다.



몇 가지 기억할만한 문구를 살펴보자.



'자유' 무역 정책은 역설적으로 그 정책을 실행에 옮기는 개발 도상국의 '자유'를 축소시킨다.


자유 무역주의 경제학자들은 반대론자들의 기를 꺾기 위해 자유 무역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진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라고 암시하는 교묘한 속임수를 효과적으로 이용해왔다.


초국적 기업들은 어느 정도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발을 빼는 방식'으로 외국인 투자를 규제하는 나라에게 본때를 보일 수 있다. 이런 주장에 대해 당장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기업의 이동성이 높아져 국가의 규제가 무력해졌다고 하면서, 어째서 개발도상국들로 하여금 외국인 투자를 규제하는 능력을 제한하는 국제 협정에 빠짐없이 서명하게 하려고 기를 쓰는 것인가?


자본에 의해 착취당하는 것보다 나쁜 딱 한가지는 자본에 의해 착취당하지 않는 것이다.


언론은 전쟁, 자연재해, 전염병, 기근, 범죄, 파산 따위의 나쁜 사건들만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국영 기업들 역시 상대적으로 언론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정부가 국영 기업 내의 부정부패를 통제하거나 일소할 능력이 없다면, 민영화를 한다 해서 갑자기 부정부패를 막을 능력이 생기지는 않는다.


신자유주의자들은 물가 상승이 일반 대중에게 피해를 준다고 떠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대중을 향한 수사는 낮은 물가 상승률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정책이 취업 전망과 임금 수준을 낮춤으로써 대다수 노동자들의 미래 소득을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은폐하는 것이다.


미국 작가 고어 비달이 미국 경제 쳬제를 "가난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유 기업. 부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사회주의"라고 묘사한 것은 매우 유명하다.


어떤 사람들은 항상 민주주의의 미덕을 칭송하면서도 '우방'인 나라가 비민주적일 경우에는 침묵을 지킨다. 이런 견해는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니카라과의 독재자 아나스타시오 소모사에 대해 "그는 개자식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우리의 개자식이다."라는 유명한 말로 대표되는 실리주의 정책의 전통을 따르는 것이다.


실제로 19세기 자유주의자들은 대부분 민주주의에 반대했는데, 그것은 민주주의는 자유 시장과 양립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경제 발전에 확실하게 좋거나 확실하게 나쁜 문화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는 평평하다 따위의 어설픈 책에 질린 분들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기 바란다. 참고로 이 책 1장 제목은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다시 읽기: 세계화에 관한 신화와 진실"이다.



EOB

토요일, 5월 01, 2010

[영화광] 허트 로커(스포일러 주의)



머리도 아프고 일도 하기 싫어서 어떤 영화를 보러 갈까 잠깐 고민하다 아바타를 제쳤다는(?) '허트 로커'를 보러 갔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대단한 만족! 물론 편집의 문제인지 자금의 문제인지 중간에 조금 내용이 이어지지 않는 느낌이 잠깐 들기는 했지만 뭐 이 정도는 충분히 용서가 가능하리라 본다. 큰 화면에 빵빵한 사운드 시스템으로 봐야 제맛인데, 유감스럽게도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마구 푸대접을 받고 있으므로 볼 사람은 얼른 봐야 할 것같다.



이 영화의 각본을 맡은 마크 보울이 플레이보이에 연재한 내용을 영화로 만든 '엘라의 계곡'도 비행기 안에서 이미 보았기에 나름 의미심장한 영화라고 생각하고 갔는데, 완전히 허를 찔리고 말았다. 이 영화를 놓고 반전 영화니 미국 중심 영화니 하는 논의는 솔직히 무의미하다는 생각이다. 소재는 전쟁이되, 사실상 주제는 전쟁이 아니니까. B급 프로그래머가 생각하기에 이 영화의 최대 미덕은 사실성도 아니고 긴장감도 아니고 액션도 아니고 눈물샘을 자극하는 산파도 아니고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강조도 아니다. 그러면 뭐냐고? 바로 '몰입'을 대단히 잘 묘사했다는 점이다.



우리의 진짜 주인공이 등장할 때까지 최첨단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로봇을 사용해 수색하고 폭발물을 해체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팀장이 전사한 다음에 새로 등장한 월리엄 하사(제레미 네너)는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아날로그 방식으로 폭발물 처리 임무를 수행한다. 게다가 거추장스럽다고 두터운 방호복을 벗어던지고 팀원 조언이 시끄럽다고 통신용 헤드셋 까지 집어던진 다음에 오직 뇌관 해체에만 집중하는 장면은 상황 자체만으로도 긴장감을 부여하기에 충분하다. 가장 위험할 때 가장 평온함을 느끼도록 만드는 담백한 시각적인 연출은 긴장감을 배가하는 효과를 준다.



작전 지역에 출동해서 일단 작업(?)을 시작하면 월리엄 하사는 거의 무아지경에 빠져버린다. 사방에 숨어 있는 저격병, 탱크라도 잡으려고 만들었는지 한 두 개가 아니라 여러 개가 함께 연결된 급조 폭탄, 사람을 초조하게 만드는 구경꾼들, 촉박한 시간에서 순간적으로 자유로워지지 않으면 목숨을 담보로 하는 폭발물 제거 작업은 절대로 불가능한 듯이 보인다. 대의 명분 때문에 군인 정신으로 작업하는 대신 아무 생각없이 집중과 몰입에 빠져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 (이 영화에서는 성조기 휘날리는 배경에서 높으신 분이 애국심을 호소하기 위해 일장 연설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격려차 온 높으신 양반은 폭탄 몇 개 제거했으며, 많은 폭탄을 제거하는 비법이 뭐냐고 묻는다. 이에 윌리엄 하사는 '살아있기 때문'이라고 우문현답을 한다. ㅎㅎㅎ)



임무를 완수하고 본국으로 돌아간 월리엄은 슈퍼마켓에서 시리얼을 못 골라서 당황해한다. 전쟁의 아픔 때문에 망가지고 사회에 부적응한 나머지 사고를 치는 대신 월리엄은 평화롭고 고요한 일상에서 벗어나 다시 전장으로 폭발물을 제거하러 돌아간다. 자신에게 능숙하고 몰입에 빠질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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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4월 24, 2010

[독서광] 블랙 스완



지난 번에 천재들의 실패에서 LTCM이 완전히 망가지는 이야기를 했었다. '인간'적 요소를 잊어버린 천재들의 비극이라고... 하지만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LTCM을 필두로 현대 금융 제국(?)의 위기를 일으킨 초대형 사건을 조금 색다른 시각으로 분석한다. 요약해서 말하지면 "블랙 스완"은 플라톤적 사고관과 정규 분포/가우스 곡선으로 무장한 이들이 다이너마이트 장작 더미에 올라 불장난을 치는 광경을 다양한 각도로 카메라에 담아낸다.



책 제목이자 아이디어를 일컫는 용어인 검은 백조(Black Swan, 모두 대문자로 시작함에 주목하라!)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속성이 있는 추상적인 개념이다.




  1. 과거의 경험으로 그 존재 가능성을 확인할 수 없는 '극단값': 대대수 사람들은 '극단값'을 배제한 상태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에 주목함으로써 불확실성이 없다고 눈감고 있다.
  2. 극심한 충격을 가져오는 요인: 하지만 위에서 설명한 '극단값'이 일단 등장했다하면 사람들이 전혀 무방비 상태로 남아있기 때문에 엄청난 충격이 온다.
  3. 일단 존재가 드러나고 나면, 설명과 예견이 가능한 대상으로 전락: 하지만 사람들은 설명의 귀재들이라, 일단 벌어진 사건은 어떤 형태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즉, 사후 설명이 불가능한 사건은 없다.


자, 그렇다면 탈레브는 '검은 백조'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할까? 책 자체가 여러 가지 개념 소개, 예제 제시, 비유, 설명으로 범벅이 되어 있기 때문에 내용 파악이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일관성있게(어떤 사람은 이를 '중언부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장하는 내용을 정리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지 않을까 싶다.




  • 자가 증식이라는 특성에 주목해야 한다: 신장이나 체중으로 줄을 세우는 평범한 왕국에서는 중력의 법칙에 지배를 받으며, 유토피아적인 평등이 지배하며, 하나의 관측값이 전체를 좌우하며, 집단이 지배하며, 과거 정보로 예측이 가능하며, 정규분포 곡선을 따른다. 하지만 재산이나 책 판매량으로 줄을 세우는 극단의 왕국에서는 불평등이 극심하고, 물리적인 제약이 없으며, 극단적인 몇 개 사건이 전체를 결정해버리며, 돌발 사건이 지배하며, 과거 정보로 예측하기가 어려운 프래탈적인 속성이 있다.
  • 확인 편향의 오류의 위험성을 깨달아야 한다: "검은 백조가 출현할 가능성이 있다는 증거가 없다"를 "검은 백조가 출현할 가능성이 없다는 증거가 있다"로 혼동하기 쉽다. 확증해주는 증거만 찾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경향에서 벗어나야 한다.
  • 사후 합리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단순화를 강요하는 조건이 세계를 실제보다 덜 무작위스럽게 여기게끔 만든다. 기억하기 쉽게 만들어 다른 사람들에게 팔기 쉽게 만드는 '이야기 짓기'는 주변에서 너무나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어떤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뒷북치는 수 많은 분석 기사(과도한 원인 찾기라는 오류)가 이를 증명한다. 사후 합리화는 심지어 미래 예측에서도 고개를 내민다. 사람들은 이야기 짓기로 만들어낸 가짜 검은 백조에 열광하는 반면 머리 아프고 추상적인 진짜 검은 백조는 과소평가하기 마련이다.
  • 정보는 지식의 장애물이다: 배움, 훈련, 경험이 인식론적 오만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소위 배웠다는 사람들이 일반인들보다 예측을 훨씬 더 멍청하게 하곤 한다. 바쁜 티와 배운 티를 내어야 인정을 받는 상황에서 '부산 떨기'는 사회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일상적인 행동 양식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변화하는 분야, 그래서 지식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는 대체로 전문가가 나오기 어렵다. 극단의 왕국에서는 예측 자체가 불가능하므로 예측으로 먹고 사는 전문가는 더욱 나오기 어렵다. 극단의 왕국에서는 어떤 일(또는 프로젝트)을 진행하면서 지금까지 기다린 시간이 길어질수록 앞으로 더 기다려야 하는 시간은 더욱 길어지기 때문이다.


탈레브는 검은 백조 아이디어를 사용해서 소위 말하는 (주로 금융) 전문가를 가장한 사기꾼(?)들을 마음껏 조롱하고 비웃는다. 삐딱선을 타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짜릿함을 느낄테고, 보수적인 사람들은 이 친구 잘난 척에 그냥 이를 갈지도 모르겠다. '조엘 온 소프트웨어'를 읽고난 독자들의 다양한 반응을 떠올려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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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4월 17, 2010

[독서광] 슈퍼자본주의



사람들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한 세트로 엮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어느 한 쪽을 공격하면 당연히 다른 쪽도 부정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슈퍼자본주의는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역임한 로버트 라이시가 썼으며, 요즘과 같은 비즈니스 후(!)렌들리한 환경에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어떻게 분리(decouple)되는지에 대해 다루는 흥미로운 책이다.



이 책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절묘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미국의 황금기(1945~1975)를 설명한 다음에 바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분리되면서 자본주의가 압도적으로 성장해 '슈퍼자본주의'라는 괴물로 성장하는 모습을 그린다. 정말로 무지막지하고 막강한 자본주의 앞에서 맥도 못추는 민주주의를 바라보면 일방적인 게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아직도 '좌빨'이니 하는 케케묵은 용어를 사용하면서 남탓하는 사람들을 병진 취급할지도 모르겠다. 너무나도 미안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왼'쪽으로 살아가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가정: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한 세트).



이 책의 주요 논지를 정리하자면, 요즘 세상은 너무나도 변동성이 크고(버튼 하나면 주식 매수/매도가 가능하고, 뮤추얼 펀드 가입/환매가 가능한 세상),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 전파력이 막강하고(금리/환율/주식 정보가 실시간으로 휴대폰에 전송되는 세상), 대량생산보다는 개인에 맞춰진 서비스가 압도적이므로(인터넷을 사용한 유통, 훌륭한 택배 시스템을 사용한 물류를 제공하는 세상) 더 이상 계획적이고 예측 가능하고 규모의 경제에 의존하는 독과점 기업 몇몇이 아니라 유동적으로 변신 합체가 가능한 기업으로 주도권이 넘어갔으며, 그 결과 개인들이 자기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업으로 자본을 집중시키기에(수익을 극대화하는 기업에 실시간으로 투자하며 1원이라도 싸고 서비스가 좋은 프렌차이즈로 고고씽!)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쥐락펴락해버린다는 내용이다.



독과점 기업에서는 개인의 선택권을 제약하고(대량 생산 때문에 모델 개수가 적으니), 품질이 그리 좋지 않고(경쟁사가 적으니 굳이 품질 싸움을 벌일 이유가 없으니), 비용이 그리 저렴하지 않은(직원 월급과 복리 후생에 신경쓰다보니) 대신 기업이 사회적인 책임을 충분히 지고 있었다(그래야 독(과)점을 보장 받을테니). 하지만 요즘 기업들은 개인의 선택권을 최대한 보장하고(안 그러면 내일 새로 생기는 기업에게 먹힐테니), 품질이 좋으며(경쟁 기업이 아주 많기에), 비용이 저렴한(직원 월급과 복리 후생은 나중 문제니) 대신 사회적인 책임도 지지 않는다(로비를 벌여 법과 정책도 바꾼다. 낄낄). 소비자이자 투자자로서 우리는 독과점 기업보다는 요즘 기업을 선호하기 마련이지만, 그 결과 벌어지는 일은 바로 민주주의 후퇴로 나타난다(기업이 사회에 대한 책임을 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책에 나오는 몇 가지 좋은 내용을 정리해보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진실은 우리 대부분의 안에 두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즉 소비자와 투자자로서 우리는 더 좋은 거래를 원한다. 그러나 시민으로서 우리는 그런 거래에서 비롯되는 많은 사회적 결과를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는 비교 쇼핑을 하고 최선의 가장 멋지고 가장 강력하고 가장 싼 물건을 찾으려 애쓴다. 하지만 우리 안의 시민은 그것의 불가피한 결과인 스트레스와 불안정에 대해 걱정한다.


현대의 CEO는 때로는 무자비해야 하고 어떻게든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교과서와 같은 표준적인 규칙은 없으며 잘 마련된 전략지침서도 없다. 그런 것이 있다면 경쟁자들이 이미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도덕성도 시장의 다른 상품처럼 가격만 맞으면 살 수 있는 것이다.


회사들에 '사회적 책임'이라는 표현을 쓴다면, 이 말은 기업이 수익을 높이기 위해 뭔가를 하다가 우연히 사회를 위해서도 나름대로 좋은 영향을 끼치는 모든 경우에 적용될 것이다.


대중은 금방 잊기 때문에 금방 용서한다.


주주들이 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자선 행위에 사용하라는 것이 아니다. 주주들은 높은 수익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다.


기업은 공동선에 관심이 없다. 선행은 기업들의 의무가 아니다.


가령 미국인들은 "Microsoft is trying to......" 혹은 "Wal-Mart wants......"라는 식으로 기업을 독립적인 단수로 취급한다. 반면에 영국인들은 "Rolls-Royce are considering ......"이라는 식으로 기업을 복수인 사람들의 집합으로 다룬다.


기업은 애국적이 아니다.


이 책 마지막 부분에서는 조금 충격적인 해법이 나온다. 의료보험을 직장에서 분리해 고소득자에게 돌아가는 막대한 혜택을 줄이는 동시에 저소득층을 위한 기금을 확보한다는 방식이나 법인세를 완전히 폐지하고 주주에게 세금을 부담하게 만들어 기업의 수익을 주주들의 수익 형태로 변경해서 기업들이 사내 유보를 못하게 만들고, 소득세를 통합함으로써 주식을 소유한 고소득자에게 유리한 세율을 자기 전체 소득에 맞춰 조정한다는 방식을 제시한다.



이 책은 내용이 중첩되기 때문에 빠르고 뭔가 화끈한 대응책과 결론을 요구하는 독자에게는 지루할 가능성이 높지만 그래도 충분히 읽을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도 이 책을 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세계화라는 쓰나미에 대응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고민거리만 하나 더 안겨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뱀다리: '삼성을 생각한다'을 읽고 나서 이 책을 읽다보니 '삼성'(여기서 '단수'다. 낄낄)은 아주 톡특한 사례로 보여진다. 하지만 언제까지 현 성장동력이 유효할지가 정말로 궁금하다. '위기'라고 느꼈다니 어떻게든 대응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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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4월 10, 2010

[독서광]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스포일러 있음)



머리도 식힐겸 경제/경영/IT 서적 대신 소설 책을 읽어보았다. 독서광인 B급 프로그래머의 관심을 끈 책은 바로 '더 리더'! 책도 많이 팔리고(무려 초판 26쇄!) 영화로도 나왔지만 다행히 주제, 줄거리를 전혀 모른 채로 읽어보았다. 혹시라도 책이나 영화를 접하시려는 독자분이 계시면 바로 [Back] 버튼을 눌러주시라.




이 책은 처음에는 사춘기 소년과 연상의 여인 사이에 사랑 놀이를 다루며 남자와 여자 심리를 파고드는 척(!)하다가 중반에는 2차 세계 대전 중에 벌어진 아픈 과거에 휩싸였지만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누명을 뒤집어쓰는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후반에는 책이라는 매개물을 사용한 소통을 다루는 복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심리 묘사가 아주 잘 되어 있기에 주인공의 안타까움을 함께 느끼며 손발이 '오그라'들면서도 그 와중에서도 무거운 과거 역사를 철학적으로 생각하게 만들므로 책을 다 읽고 나서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 속을 멤돌았다.



이 책 지은이가 법대 교수이자 재판관이다 보니 법과 철학에 대한 심오한 이야기도 제대로 나온다. 가장 마음에 와 닿은 내용을 정리해보았다(법대 다니는 주인공과 철학과 교수인 아버지 사이에 오간 대화다).



"하지만 어른들의 경우에는 내가 그들에게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들 스스로가 좋다고 여기는 것보다 우위에 두려고 하면 절대 안 돼."

"나중에 가서 그들 스스로 그로 인해 행복해질 경우에도 말인가요?"

"우리는 지금 행복이 아니라 품위와 자유에 대해 말하고 있어. 넌 아주 꼬마였을 때부터 그 차이를 잘 알았잖니. 엄마의 말이 늘 옳은 것이 내겐 별로 마음 편치 않았잖아."


이 책의 중심에는 책을 읽는 행위가 튼튼하게 자리잡고 있다. 사랑을 나누기 전에 책을 읽으며, 편지 대신 책을 읽는 목소리를 녹음한 테이프로 서로 소통한다. 그 중간에는 책을 읽지 못하며 글을 쓰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에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내용이 나온다. 책은 눈으로 읽는 물건이라고 인식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책이 귀로도 듣는 물건으로 탈바꿈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눈으로 읽거나 귀로 듣거나 머리로 생각하게 만든다는 공통점을 공유한다. 갑자기 누군가 B급 프로그래머에게 책을 읽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너무 사치스러운 생각일까? 그냥 아이포드 터치에 오디오 북이나 포드캐스트를 넣어서 듣고 다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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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4월 07, 2010

[독서광] 봄 맞이 책 2선: 인터넷에서 살아남는 법

불가피한 외부(?) 사정에 의해 2월 달 developerWorks는 건너뛰었었다. 혹시나 걱정해주신 애독자분이 계시다면 죄송하다는 말씀 드린다. 이번 달 developerWorks 서평은 인터넷 관련 이야기를 담은 서적 두 권이다.




  • 구글드: 우리가 알던 세상의 종말: 구글이 기존 미디어 업계를 완전히 뒤집어놓은 이야기를 연대기순으로 정리한 책이다. 구글이 기존 질서를 붕괴시키고 주도권을 잡는 과정이 적나나하게 나온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국내 미디어 업계의 미래에 대해서도 대충(?) 예측이 가능하리라 본다.
  • 크라임웨어: 쥐도 새도 모르게 일어나는 해킹 범죄의 비밀: 이 책은 해킹 범죄의 중심에 서 있는 크라임웨어를 기술적, 사회(공학)적, 경제적, 정치/법률적인 관점에서 다룬다. 스타일과 내용 전개 방식이 논문처럼 느껴져서 딱딱하긴 하지만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므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겠다. 개인 정보 보호 사고가 많이 터지는 상황에서 정신 바짝 차릴만한 동기를 부여한다.


눈감으면 코 베어가는 인터넷 세상에서 정신 줄 놓지 않도록 늘 깨어있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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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4월 05, 2010

[독서광] 삼성을 생각한다(스포일러 없음)



소시적에 대본소(!) 무협지를 아주 즐겨 읽었다. 솔직히 무협지 10질만 읽고나면 그 다음부터 대동소이한 전개 방식에 따분함을 느낄 가능성도 있지만 그래도 주인공의 끝내주는 활약을 기대하며 지치지 않고 읽었었다. 무협지가 너무나 비현실적이라 현실적인 느낌을 주었기 때문에 현실 도피처로 활용(?)했다는 생각도 든다. 이번에 '삼성을 생각한다' 2부를 읽으면서 딱 반대 느낌이 들었다. 김용철 변호사가 쓴 내용이 너무나 현실적이라 비현실적인 느낌을 받았다(다른 책과는 달리 A, B, C가 아니라 진짜 실명이 팍팍 나오므로 자기 이름이 안 나왔는지 궁금해서 이 책을 구매한 사람도 많으리라는 생각이다. 낄낄...). 물론 주인공(?)과 주인공을 보필하는 주변 인물의 끝내주는 활약(?)은 여느 무협지나 마찬가지로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이번에 회장님께서 복귀하는 소식을 듣고도 별로 놀라지 않은 이유는 '삼성을 생각한다'의 외전이 나왔구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때가 되었기에 돌아오시지 않았을까 싶다. T_T



책 내용이야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하면 예고 편이 주루룩 나오므로 여기서 굳이 열거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스포일러를 적으면 재미가 반감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론? 2010년 최강의 블록버스터인 이 책을 꼭 읽어보기 바란다.



뱀다리: 책 분량의 압박 때문에 3부에 들어가기 전에 지칠지도 모르겠는데, B급 프로그래머는 오히려 본방송인 2부보다는 3부가 더 재미있었다. 엔지니어들이 사회 생활을 힘들어하는 이유가 다 있었구만... T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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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3월 20, 2010

[독서광] 경제학 콘서트2



2007년 11월에 경제학콘서트1에 대한 서평을 올리고 거의 2년 반만에 2탄 서평을 올리게 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형만한 아우가 있을지 차근차근 살펴보기로 하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1편보다는 2편이 좀더 사람들의 이목을 끌만한 내용이 많다는 생각이다. 1장부터 섹스와 AIDS 이야기로 시작해 3장 멋진 여자가 평범한 남자와 결혼하는 이유(낄낄)과 4장 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연봉의 비밀을 거쳐 7장 도시에서 영리하게 살아가기에 이르기까지 평상시에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던 여러 가지 현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려고 나름 신경을 쓴 흔적이 보인다.



이 책은 논리 전개 방식에서 게임 이론에 상당히 많이 의존하고 있지만, 폰 노이만 방식(낄낄)이 아니라 토머스 셸링을 따르고 있다. 셸링은 수학과 논리가 아니라 수학으로는 보이지 않는 '초점(focal point)'에 의해 인간의 전략적 상호 작용이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게임 이론 자체가 잘못되거나 문제가 있다는 말이 아니라 인간의 상호 작용 대부분이 모호함으로 가득차 있기에 초점을 이용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일어나지 않을지를 알려주는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다. 본문 예를 한번 볼까?



노조 대표는 임금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조합원들이 10퍼센트 미만의 임금 인상률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닐지도 모른다. 10퍼센트는 수학적으로 중요한 숫자가 아니다. 폰 노이만이라도 '10퍼센트'라는 숫자가 나온 기준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셸링은 일단 10퍼센트라는 숫자가 언급되고 나면 이 숫자의 중요성이 커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서 나온 익숙한 소재인 워싱턴-모스크바 핫 라인(긴급 직통 전화)도 셸링이 제안했다고 한다. 냉전의 한 복판에서도 핫 라인 운영자들은 매일 인사말을 주고 받으며 연결이 끊어지지 않도록 노력했고, 그 결과 빠르고 신뢰할만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함으로써 지구 멸망(?)을 피하도록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셸링이 2005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으며 한 말은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 반 세기 동안 일어났던 가장 극적인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던 사건이다. 우리는 분노에 휩싸여 핵무기를 터뜨리는 사고 없이 지난 60년을 살았다.


이 책에서 이런 이야기만 계속해서 나왔다면 읽다가 집어 던질 가능성이 높겠지만 셸링의 이론을 활용해서 여러 곳에 응용을 하고 있기에 '강남에 이쁜 여자가 많은 이유', '나보다 못생긴 내 친구가 어여쁜 아가씨를 친구로 두는 이유', '놀고 먹는듯이 보이는 사람이 매일 밤새는 나보다 월급을 많이 받는 이유', '강남 집값이 지칠줄 모르고 오르는 이유', '골드 미스가 인기가 없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뭐 이 책 내용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지엽적이라도 "아하~ 그렇군!"하는 순간이 몇 번 올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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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3월 14, 2010

[일상다반사] 클린 코드: 애자일 소프트웨어 장인 정신



작업이 거의 1년 정도 지연된 끝에 결국 해님과 함께 번역한 클린 코드 번역서가 출간되었다. 로버트 C. "엉클 밥" 마틴이 쓴 이 책은 자바 프로그래머를 대상으로 코드를 항상 깨끗하게 유지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다양한 사례와 (경험으로 정리한) 패턴을 들어 설명한다.



자바 쪽으로 치우쳤고 너무 자의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는다고 싫어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래도 일단 (속는 셈치고) 한번 읽어보면 실제로 프로그램을 작성하고 개선하는 과정에서 많은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좋은 코드와 나쁜 코드를 구분하는 방법
  2. 좋은 코드를 작성하는 방법과 나쁜 코드를 좋은 코드로 바꾸는 방법
  3. 좋은 이름, 좋은 함수, 좋은 객체, 좋은 클래스를 작성하는 방법
  4. 가독성이 높아지도록 코드 형식을 맞추는 방법
  5. 코드 논리를 흩뜨리지 않고서 완벽한 오류 처리를 구현하는 방법
  6. 단위 테스트와 테스트 주도 개발을 적용하는 방법


여느 자기 개발서(?)와 유사한 책과는 달리 읽을 순간에만 기분좋게 만드는 이론적인 내용이 많으리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책은 중반 이후부터 실제 코드 예를 분석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므로 코드 흐름을 잘 쫓아가며 읽어야 한다. 따라서 가벼운 기분으로 출퇴근 시간에 읽기에는 조금 무거운 책이라고 보면 틀림없겠다. 온라인 서점에는 역자 서문이 올라와 있지 않기에 여기에 독후감을 대신해 정리해보았다.




이 책을 읽고 난 다음에 한 동안 프로그램을 짜기가 싫어졌다. 급하다고 허둥지둥 서둘러오면서 온갖 나쁜 코드를 만들어온 스스로가 이유 없이 미워지기도 하고 자신감도 잃어버렸다. 아직까지 완벽하게 회복했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리라.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라 정신을 차린 다음에 요즘도 계속해서 프로그램을 짜고 있다. 하지만 과거와는 달리 조금 더 나아진 방법으로 코드를 만들기 위해 의식적으로 신경을 쓴다.

이 책은 자바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해서 프로그램을 작성할 때 자기도 만족스럽고 남도 만족스럽도록 깨끗한 코드를 작성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뭐 여기에 엄청나게 위대한 코드 스타일이나 여태껏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비법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겠지만, 평상시에 놓치기 쉽고 실수하기 쉬운 여러 가지 패턴을 실제 예를 들면서 소개하고 있기에 어느 정도 자바 프로그램에 익숙한 사람이 보면 느끼는 바가 많을 것이다.

우리가 프로그램을 짜다 보면 코드를 쓰는 시간보다 (남은 물론이고 자신도 정신이 하나도 없이 어지럽힌) 코드를 읽는 시간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이 책에서 제시하는 보이스카웃 규칙을 다를 모든 규칙에 앞서 특히 신경을 써서 봐야 한다. 보이스카웃 단원들에게 야영장에 들어올 때보다 나갈 때 더 깨끗한 상태로 만들 의무가 있다면, 우리 개발자들에게는 체크아웃해서 코드를 꺼낼 때보다 체크인해서 코드를 넣을 때 더 깨끗한 상태로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 기능 개선의 낭만적인 표현인 유지보수 작업으로 인해 모두들 신경 쇠약에 걸리고 있는 주변을 보면 이런 규칙의 중요성이 더욱 가슴에 와 닿을 것이다.

이 책 앞 부분에서 몇 가지 패턴과 규칙을 익혔다면 저자 머리 속에서 코드를 정리하는 흐름에 따라 코드를 깔끔하게 정리하는 후반부에 집중하도록 하자. 단편적인 코드 스타일과 코드 기법을 다루는 책은 시중에 제법 나와 있으나 의식의 흐름을 그대로 투영해 완결된 코드를 대상으로 차음부터 끝까지 리펙터링하는 진풍경을 다루는 책은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이 책이 독자 여러분에게 주는 가치는 아주 특별하리라.


이 책이 절대적인 진리를 담고 있다거나 이 책만 읽으면 100% 깨끗한 코드를 작성할 수 있다고 믿으면 곤란하다. 늘 그렇듯 핵심은 '실천'에 있기 때문에 자신만의 길을 찾아 계속해서 갈고 닦고 노력하지 않으면 잠시 기분 좋았다가 일상으로 돌아가자마자 다시 번뇌에 휩싸이는 악순환이 반복될테니까...



EOB

월요일, 3월 01, 2010

[독서광] 질병 판매학



이 책은 처음 제목에서 상상한 바와는 달리 다국적 기업에 얽힌 온갖 비리와 악행을 폭로하기 보다는 질병을 세련되고 정교하게 마케팅 수단으로 삼는 방법에 대해 다루고 있다. 따라서 이런저런 뒷 이야기를 까발리는 재미가 떨어지므로(실제로 저자는 다국적 기업의 못마당한 마케팅 태도에 대해 비판하는 와중에서도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려고 무지 노력한다.) 책 띠지에 나온 '충격 보고서'까지는 가지 못한다. 하지만 다국적 기업의 표본인 거대 제약사가 수행하는 마케팅에 대해서는 책을 다 읽고나면 어느 정도 감이 잡을 수 있으리라 본다.



바쁜 애독자 여러분을 위해 이 책의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건강한 사람에게 약을 팔기 위해 없는 병도 만들어 내고, 특정 증상을 특정 질환의 특징으로 좁히고, 교묘하게 병명을 바꿈으로써 약으로 완치할 수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기존에 알려져 있지 않은 (흔치 않은 질병을) 캠페인 형태로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 식품의약국, 대학, 연구자들에게 도넛부터 시작해서 연구자금까지 막대한 $을 퍼부어 우호적으로 만드는 다양한 마케팅 기법을 고콜레스테롤, 고혈압, 골다공증, 과민성 대장 증후군, 우울증, 월경 전 _불쾌_장애, 폐경, 사회불안장애, 주의력결핍장애, 여성 성기능 장애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고 보면 된다.



책을 읽다보면 다소 따분한 느낌이 오는데, 회사와 질병만 다르지 사실상 거의 유사한 시나리오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통계 자료 조작, 자신들에게 유리한 부분만 언급, 부작용에 대해서는 문제가 생길 때까지 함구, 사고 터졌을 경우 입막음, 유명인을 활용한 질병 전파, 오피니언 리더를 활용한 지역 사회 여론 조장 등 각 장마다 비슷한 이야기가 계속해서 펼쳐지고 그 와중에서 피해는 우리 모두가 지게 된다(환자 아닌 환자의 고통, 의료비 상승으로 인해 사회 보장 제도의 여건 악화).



이 책에 나오는 양심적인 의사들은 하나같이 약으로 특정 질병이 완벽하게 치료된다는 착각을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키는 점에 대해 경고한다. 사실상 적절한 운동과 건강 관리가 뒷받침되지 않는 약물 사용은 그 자체만으로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가 극히 어려울 뿐더러 건강한 사람까지 약물을 사용함으로 인해 얻게되는 부작용도 만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적절한 약물 사용으로 진짜 환자를 고통에서 구원해준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지만(대부분 이런 반론은 제약사 연구 자금을 얻어 연구한 쪽에서 나온다) 어디까지 환자로 규정해야 하는지를 두고 다국적 기업과 시민단체가 벌이는 갑론을박을 보고 있으려면 진실은 저 건너 편에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약을 두고 '충족되지 않은 수요'와 '충족된 불필요한 수요' 사이에 벌어지는 논쟁에서 제 3 국가에서 사용하는 효과적인 말라리아 치료제는 '충족되지 않은 수요'임에 틀림이 없지만 막상 다국적 기업들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수요' 문제가 아니라 '돈' 문제가 아닐까? 제약사들도 자선 사업이 아니라 실패 확률이 비교적 높은 일종의 벤처(?)를 하다보니 한 몫 잡아야 한다는 사실은 납득이 가지만 소비자를 속이고 기만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괴씸한 생각이 저절로 든다. 여튼 최첨단 마케팅에 속지 말고 화끈한 약 선전일수록 한번 더 의심하는 습관을 기르자. 자기 건강은 자기가 지켜야 하기에...



EOB

일요일, 2월 21, 2010

[독서광] 일개미의 반란: 우리가 몰랐던 직장인을 위한 이솝 우화



먼저 구매해서 읽어본 다음에 B급 프로그래머에게 선물한 꼬양이 군(꼬양이 군 맥주 한 잔 사줄께. 낄낄)도 말했지만, 아마 사회 초년 시절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뭐 이런 내용이 다 있어?"라고 버럭! 화를 내며 책을 던져버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회사 좀 다니고 늙어가다 보니 이런 부류의 책이 너무나도 가슴에 와닿으며 주마등처럼 몇몇 인물들이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간다.



이 책은 이솝우화를 하나 제시한 다음에 빗대어 마치 정글과도 같은 직장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뭐 이솝 우화야 어릴 때부터 많이 봐왔기에 아주 친숙하지만 직장 생존 지침서에 등장하니 이건 또 색다른 맛이 느껴진다. 물론 책을 읽다보면 상당히 혼란스러운 구석도 존재한다. 어떤 이야기를 읽으면 특정 상황에서 이렇게 해야 할 듯이 느껴지다가 다른 이야기를 읽으면 반대로 해야 할 듯이 느껴지는 경우도 있고, 이 책에 나온대로 상황이 그대로 흘러가지 않는 사례가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쓸모없거나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 어차피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정답은 없고 모순적인 상황에 부딪히기 마련이니까.



본문 중 뼈있는 조언 몇 가지를 정리해보겠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음지가 양지되고,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실력이 출중해도 주변의 견제를 받지 않으려면 겸손해야 한다. 일시적인 업적 달성과 상사의 칭찬에 고무돼 자만하게 되면 사자에 의해 장렬하게 전사해야 하는 상황이 반드시 생긴다.


성과를 칭찬받는다면 상사에게 공(功)을 돌려라. 프로젝트 수행 과정에서 상사의 도움이 있었다면 상사에게 동을 돌리는 것이 마땅하지만 딱히 방해가 되지 않았다 해도 상사에게 공을 돌리는 게 좋다. 대부분의 상사는 공을 상사에게 돌린 부하 직원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진다.


신입사원은 무조건 잘해줘라. 직장생활에서 만나는 사람과의 관계는 한두 해의 짧은 기간이 아니라 10년, 20년 동안 긴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자기보다 직급이 낮다는 이유로 소흘하게 대하거나 무시한다면 참으로 아둔하게 처신하는 것이다. ... 인생은 반전과 반전의 연속이다.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상대방을 궁지로 몰면 안 된다. 특히 유능하고 영리한 상대방을 공격하는 건 위험하다. 직장생활은 단기전이 아니라 장기전이다. 지금 다니는 직장뿐 아니라 동종 업계에서 생존하는 데 문제가 될 수 있다. 어제의 부하 직원이 오늘 '갑'이 될 수 있고, 경쟁사 사장이 될 수도 있다. 유능하고 영리한 상대방을 공격하면 호된 반격을 받게 된다. 그리고 되돌아오는 반격의 강도는 자기가 가한 공격보다 훨씬 더 크고 치명적이다.


어떤 상사도 '하극상'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조직의 생리를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극상을 허용하는 순간 자신도 하극상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 그는 부하 직원이 상사를 죽이는 것을 허용하는 조직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이 책 저자는 끝까지 살아남아서 보란 듯 최후의 승자가 되는 방법이 최고의 반란이라고 말한다. (특히 회사 생활이 어렵고 힘든 상황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험하고 험한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되돌아보면 좋겠다. 조금 경력이 쌓이고 고민이 많은 직장인에게 추천하는 바이다.



EOB

토요일, 2월 20, 2010

[끝없는 뽐뿌질] USB 2.0 IDE/SATA 변환기



요즘 갑자기 구형 HDD를 수리해달리고 요청(?)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뭐 어찌어찌해서 살려주고(B급 실력으로 가능하다면) 안 되는 물건(?)은 돌려보냈다. 이 과정에서 마땅히 외장 HDD에 연결할만한 장비를 갖추고 있지 못해 상당히 고전했다. 결국 편하게 살기 위해 거금 1만 7천원을 들여(쿠폰이랑 신용카드 할인이랑 받으니 몇 천원 빠졌다) USB 2.0 IDE/SATA 변환기를 하나 구매했다. 이 변환기의 원리는 간단하다. IDE 2.5인치와 3.5인치, SATA 데이터 단자가 달려있고 반대쪽은 USB 단자가 달려있다. 즉 외장 HDD 케이스에서 핵심만 뽑아낸 녀석이라 보면 틀림없겠다. 3.5인치 HDD의 경우에는 전원이 필요하므로, 별도 어댑터를 제공한다(IDE HDD를 위한 전원 케이블과 이 케이블에서 SATA로 바꾸도록 만드는 케이블이 따라온다).



선전 문구만 보면 이거 정말 물건이라고 생각하고 구입하기 쉬운데... 실제로 해보면 호환성 문제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혹시 모르니 B급 프로그래머가 테스트한 결과를 제시할테니 혹시 구매하실 분이 계시면 정화수 떠놓고 부디 내가 보유하는 하드웨어와 잘 호환되기를 기도부터 하기 바란다. T_T




  • 히타치 10G IDE 3.5인치: good! ThinkPad T400/윈도우 비슷혀에서 한 방에 인식하고 바로 마운트되었다.
  • WD 13.5G IDE 3.5인치: bad! ThinkPad T400/비슷혀에서 USB 인식은 되었지만, 볼륨 인식이 안 된다(디스크 관리자에서 봐도...)
  • 삼성 80G IDE 3.5인치: good! ThinkPad T400/비슷혀에서 한 방에 인식하고 바로 마운트되었다. 80G짜리는 외장 HDD에 넣어서 틈틈히 쓰고 있다.
  • LG CD-RW(DVD 안 되는 버전): bad! 전원 연결 단자와 데이터 연결 단자 간섭이 심해 발톱 쑥 나오게 만든데다가 ThinkPad T400/비슷혀에서 인식도 못 한다.


JMIcorn이라는 대만 회사가 만든 칩셋을 사용하고 있으므로 이 칩을 사용하는 유사 장비들도 호환성을 100% 유지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그런데... 정말 혹시나 해서 WD 13.5G를 맥 미니에 연결해 테스트를 했는데... 놀랍게도 마운트 아주 잘 된다. 맥 OS X용 디스크 관리자로도 잘 잡히니 이 무슨 조화냐? ㅋㅋ HDD는 물론이고 컴퓨터 본체 쪽도 손을 타는 모양이다. 여튼 집에 혹시 뒹굴뒹굴하는 구식 HDD가 많은 분들은 백업 용으로 이 제품을 한번 고려해봄직하다. 아무래도 외장 HDD 케이스쪽이 인식률도 좋고 속력도 더 빠를 가능성이 높지만 매번 두껑 열어 끼웠다 뺐더 몇 번 하다보면 열 받은 나머지 이런 부류의 제품을 구입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USB 메모리도 8G, 16G 짜리가 나오니 10G짜리 HDD를 살리기 위해 돈을 투자하는 행위가 조금 어리석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사 놓고 나니 타임머신에 안 걸렸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과거 자료를 막 넣기에는 딱이네?



EOB

일요일, 2월 07, 2010

[독서광] 지하철과 코코넛



[독서광] 연재에서 창의력과 관련된 책을 여럿 소개했었다. 오늘도 역시 창의력과 관련이 있는 책을 한 권 소개하려고 하는데, 기존 창의력 책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는 몇 가지 내용을 정리할테니 정신 바짝 차리고 읽기 바란다.



오늘 소개할 '지하철과 코코넛'은 우리가 늘 소망하는 부와 성공을 좌우하는 요소 중에서 '운'을 집중적으로 강조한다. 이 책만 읽으면 부와 성공을 한 방에 거머질 수 있다는 시중에 널리고 널린 자기 계발서와 처세서와는 달리 이 책은 어떤 은총알(silver bullet)도 거부하고 있다. 그렇다고 한방의 무엇만 바라고 뒷짐지고 '수주대토(守株待兎)'하는 태도를 부추기지도 않는다. 노력과 운의 절묘한 조화를 재치있게 정리하고 있기에 책을 읽다보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B급 프로그래머는 책을 읽다 흥미로운 부분이 나오면 나중에 블로그 정리를 위해 책 귀퉁이를 접는 버릇이 있는데, 솔직히 의료, 경제, 경영과 관련해서 통제감의 착각을 다루는 9장까지는 조금 졸면서 읽었다. 하지만 10장부터 호떡집에 불난 듯 허겁지겁 책 내용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후반부는 불확실성의 두 가지 유형(지하철과 코코넛으로 대표되는), 창의력의 비밀과 고수가 되기 위한 조건, 불가피한 상황에서 결정을 내리는 네 가지 기법('싱킹', '블링킹', '스밍킹', '전문가 의견'), 행복해지기 위한 조언을 제시하고 있다.



아웃라이어를 비롯한 몇 가지 책을 흥미롭게 읽어봤다면, 이 책 역시 또 다른 시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창의력과 고수에 대해 몇 가지 재미있는 부분을 인용해보겠다.



이 세계의 진정한 문제점을 세계가 비합리적이라는 것도 아니고, 합리적이라는 것도 아니다. 가장 일반적인 문제는 세계가 거의 합리적이되, 완전히 합리적이지는 않다는 데 있다. 삶은 불합리적이지 않다. 하지만 삶은 논리학자들에게는 덫이다. 삶은 실제보다 좀 더 수학적이고 규칙적으로 보일 뿐이다. 삶의 정확성은 뚜렷하게 드러나지만, 그 부정확성은 감춰져 있고 그 황폐함은 숨어서 기다리고 있다. - 체스터턴


역설적으로 모든 정보를 극히 합리적인 방식으로 평가할 수 있다면, 그 결과 '소음'이 결여되어 독창적이고 참신한 문제 해결의 기회도 줄어들 것이다. ...... 극작가 버나드 쇼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합리적인 사람은 자신을 세상에 맞추고, 비합리적인 사람은 세상을 자신에게 맞추려고 애쓴다. 따라서 모든 진보는 비합리적인 사람에게 달려있다."


지망생들이 전문적인 기량을 쌓으려면 계획적 훈련에 최대한 많은 시간을 투자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시간을 극대화한 계획적 훈련은 단기간에 끝나지 않고 결코 쉬운 일도 아니다. 그 과정은 적어도 10년 이상 걸리며, 여러 가지 제약 아래 최대한 효과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첫째, 계획적 훈련을 하려면 교사와 훈련 장비, 훈련 시설은 몰론 당사자가 이용할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둘째, 계획적 훈련을 위한 동기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선수들은 연습을 기량 향상을 위한 수단으로 여긴다. 결과에 기쁨이 따르는 것과는 달리 연습에는 보상이나 즐거움이 없어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연습을 시작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마지막으로 계획적 훈련은 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해야만 장기간 지치지 않고 지속할 수 있는 힘든 활동이다. - 앤더스 에릭슨


계획적 훈련은 기존의 기량 수준을 넘어서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하지만 적절하면서도 측정 가능한 피드백을 받아야만 비로소 그 수준을 넘어설 수 있다. 테니스나 체스 등 체계적인 경기에서는 그런 피드백을 얼마든지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그런 피드백을 얻기가 훨씬 어렵다. 경영/정치/의학/경제에 이르면 좋은 피드백을 받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위대함은 부분적으로 도박이라고 할 수 있다. 성공의 정상에 도달하려는 시도는 비싼 복권을 사서 추첨에 참가하는 것과 비슷하다. 복권과 마찬가지로 성공 확률은 낮지만, 10년 간에 훈련을 고려한다면 참가 비용은 엄청나게 비싼 것이다.


의사 결정을 내리는 방법 중에서 '싱킹'(대부분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주도면밀한 과정을 통한 결정)이나 '블링킹'(본능적인 반응)은 이미 많이 들어봤을텐데, '스밍킹'이라는 단어에 고개를 갸웃하는 독자들도 많으리라. 하지만 B급 프로그래머 애독자라면 이미 '소프트웨어 크리에이티비티 2.0'에서 로버트 L. 글래스가 사용한 만족화(지금 당장 크리에이티비티를 펼쳐 3장을 다시 한번 읽어보시라!)라는 개념을 되새김질해보자. ' 씽킹', '블링킹', '스밍킹'과 관련한 몇 가지 재미있는 부분을 인용해보겠다.



반복적인 의사결정은 간단하다는 것이다. 적절한 변수를 찾아내고 단순한 결정 기준을 사용하라. 스밍킹은 실수를 줄이기 위해 실수를 받아들인다. 그것은 통제의 역설을 보여주는 최고의 사례다. 당신은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대신 가장 중요한 지표를 찾아내어 사용하고, 올바른 결정이 훨씬 많을 거라는 사실에 위안을 느끼면서 잘못된 결정을 감내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첫째, 체스 고수는 10년 이상 변함없이 정확한 피드백이 따른 집중적인 훈련을 거친 이후에 비로소 블링킹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둘째, 고수들은 블링킹과 싱킹을 함께 이용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모든 블링킹의 타당성을 확인하기 위해 씽킹을 이용한다. 모든 수의 75%는 체계적 분석으로 일차적 직관(블링킹)이 타당함을 확인한다. 하지만 25%는 심사숙고 끝에 직감을 바로잡는다. 다시 말해, 싱킹은 고수의 성공에 필수적이며 성공적인 블링킹의 전제 조건이다.


창의력, 행복, 전문가, 피드백, 성공, 의사 결정, 위험 관리와 같은 키워드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기 바란다. '운'의 중요성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을테니까.



EOB